'디지털 출판물 불법복제 개선 방안 모색'을 위한 국회 정책 토론회가 11월 6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렸다. 토론회는 학술·교육 출판의 기반을 잠식하고 있는 디지털 불법복제 문제를 다루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김교흥 위원장(더불어민주당)과 정연욱 위원(국민의힘)이 공동 주최하고, 한국학술출판협회·대한출판문화협회·한국과학기술출판협회·한국대학출판협회가 공동 주관했다.
여야 의원, 출판 4개 단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저작권 보호기관, 법조계, 대학생 대표 등이 한자리에 모여 디지털 환경에서의 불법복제 실태와 대응 전략을 종합적으로 논의하는 자리였다.
김교흥 국회 문체위원장은 환영사에서 디지털 기술 확산과 코로나19 이후 원격수업 증가가 출판물 불법복제를 폭발적으로 키웠다고 지적하며, 국내 출판산업이 불법복제로 연간 1조6천억 원 규모의 손실을 입고 있다는 점을 자료를 근거로 상기시켰다.
김교흥 위원장은 불법 PDF 유통과 무단 스캔이 합법 판매를 잠식하면서 신규 도서 기획과 투자, 그리고 창작자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동시에 위축되는 악순환이 구조화되고 있다고 경고하고, “불법복제는 단속에 그칠 문제가 아니라 지적 생태계 전반을 위협하는 문제”라며 국회의 법·제도 개선 의지를 밝혔다.
정연욱 위원은 환영사를 통해 “허락되지 않은 공유가 하나의 습관, 하나의 문화가 되어버렸다”고 진단하며, 특정 집단의 일탈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책을 정당하게 읽는 사회로 돌아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국회와 출판계, 이용자가 함께 던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책을 만드는 노동과 신뢰의 가치를 상기시키며, 종이냐 디지털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문장을 쓸 권리와 정당하게 읽을 권리를 지키는 공적 규범의 회복이 핵심이라고 짚었다.
한국학술출판협회 박찬익 회장은 인사말에서 이번 토론회가 2024년 ‘디지털 불법복제 실태와 대안’ 논의의 연장선에 있음을 밝히며, 학술출판계가 버스 래핑 캠페인, 불법 스캔 채증 및 고발, 대학생 대상 인식개선 조사와 워크숍 등을 통해 대응해 왔지만, 여전히 현장에서 체감할 만큼의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정책토론회 내용을 바탕으로 불법복제에 대한 인식의 변곡점을 만들어야 하며, 국회와 정부가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윤철호 회장은 디지털 환경과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출판물이 통제 불가능한 방식으로 활용될 위험을 지적하며, 이대로 방치할 경우 “출판은 공익 봉사에 머무르고 콘텐츠 생산은 기근 상태에 내몰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자책과 교육용 디지털 플랫폼을 출판사가 주도하는 구조를 구축해 합법 유통과 학습 편의를 동시에 실현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한국과학기술출판협회 장주연 회장과 한국대학출판협회 신선호 이사장은 대학교재와 학술콘텐츠 불법복제가 “학술 생태계의 기반을 훼손하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지적했다.
특히 신선호 이사장은 강의실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불법 스캔본과 PDF가 상시 유통되는 현실이 대학출판부와 학술출판사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고 있으며, 그 결과가 “양질의 지식 부족”과 미래 세대를 위한 지식 생산 위축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그는 대학교재 구입 바우처, 전자책 구독 등 교재비 공적 지원, 이용자 친화적인 DRM과 통합 전자책 플랫폼 구축, 대학 구성원 대상 상시 저작권 교육을 핵심 대안으로 제시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이구용 원장 직무대행은 축사에서 디지털 불법복제가 학술 교재 시장 붕괴와 출판사의 출간 의지 약화로 직결되고 있음을 지적하며, 진흥원이 추진한 온라인 모니터링, 대학생 저작권 홍보단, 체험형 저작권 워크숍 등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이번 토론회가 불법복제 문제의 심각성을 공론화하고, “창작물에 정당한 값을 지불하는 문화”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첫 번째 발제에서 제주대학교 최낙진 교수는 10개 학술전문출판사를 대상으로 한 심층 인터뷰와 설문조사 중간 결과를 발표하며, 코로나19 이후 불법복제가 복사·제본 중심의 물리적 방식에서 스캔·클라우드 링크·폐쇄형 커뮤니티를 통한 비가시적 유통 구조로 전환되었음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학생들 사이에서 PDF 공유가 정품 교재 구매보다 “효율적인 학습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고, 교수 강의자료와 부분 스캔본이 학과 단체방을 통해 자연스럽게 유통되면서 불법복제가 “편의와 문화”의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 교수는 이를 학술출판의 가치사슬을 붕괴시키는 구조적 문제로 규정하고, 인식 개선과 정책·제도 정비, 산업 차원의 공동 대응을 결합한 종합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한국학술출판협회 홍정표 부회장은, 개별 출판사의 역량을 넘어서는 체계적 대응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학술·전문 출판단체가 중심이 되는 통합 대응 체계 구축, 침해 정보의 신속한 모니터링과 증거 보전, 법률 지원, 교육과 캠페인을 연계한 전략을 제안했다. 경미한 이용자에 대해서는 교육과 계도를 중심에 두되, 상습적·상업적 불법 유통에 대해서는 강력한 법적 조치를 병행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이를 통해 “출판 생태계 전체의 방어력을 높이는 공동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종합토론에서는 한국저작권보호원, 출판사, 대학 출판부, 교수, 법조계, 언론, 대학생 패널이 각자의 위치에서 현실 진단과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토론자들은 과제 제출 시스템에 저작권·공정이용 확인 절차를 연계해 이용자 스스로 저작권 윤리를 점검하도록 하는 방안, 불법 교재 사용에 대한 학칙 기반 제재, 정품 교재 구매자에게 학습 포인트를 제공하는 유인책, 교재 구입 지원 바우처 제도, “합법이 더 싸고, 더 편리한” 전자책·정액제 서비스 모델 도입, 수업목적보상금 제도 조정과 전자교재 활용 연계 등을 제안하며, 불법복제를 줄이기 위한 실질적 정책 도구들을 구체화했다.
이번 정책토론회는 디지털 출판물 불법복제를 단순한 개별 위법 행위가 아니라, 학술·교육 출판과 지식 접근 구조 전반을 뒤흔드는 구조적 위기로 규정하였다.
즉 불법복제 대응은 처벌 강화만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합법 유통 경로의 접근성과 경제성을 높이고, 창작자와 출판사가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공정한 생태계를 설계하며, 정부·국회·출판단체·플랫폼·이용자가 함께 참여하는 순환형 대응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정책토론회를 통해 출판의 공공성과 산업의 성장이, 대립이 아닌 상호 보완의 구조로 정착될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지식문화 강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