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윤희 (책문화생태학자, 문화평론가)
오늘(11월 11일) 오전 대통령 국무회의 생중계를 보며 문화정책의 구조 변화를 위한 중요한 장면을 지켜보았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업무보고에서 체육단체 혁신 방안이 제기되었고, 이재명 대통령이 대한체육회장 연임 제한과 온라인 투표제 도입 등 구조 개편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다.
정부는 대한체육회장 임기를 1회 연임까지만 허용하고, 소수 선거인단 중심 간선제를 회원 참여 직선제로 전환하며, 온라인 투표 시스템을 도입하는 정관 개정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종신 회장’과 폐쇄적 카르텔 구조를 끊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다.
그러나 이 문제는 체육계만의 과제가 아니다. 문체부 소관 각종 사단법인, 특히 공적 권위를 자임하고 정책·예산·심사 구조에 깊숙이 관여하는 단체들의 거버넌스 전반을 다시 묻는 출발점이어야 한다.
우리의 헌정 질서를 보면,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선출직 공직자는 헌법과 법률에 따라 임기가 제한된다. 이는 권력의 사유화와 장기 집권을 막고 민주적 정당성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그런데 공공성과 영향력 측면에서 공공성을 가지고 업무를 수행하는 문체부 산하 사단법인 상당수는 회장 임기 제한이나 선출 방식이 극히 제한된 인원만 참여하는 구조에 머물러 있다.
대통령 등 선출직 권력에는 임기가 있는데, 공적 예산과 상징 자원을 다루는 민관 단체의 권력은 사실상 무기한 지속될 수 있는 이 비대칭 자체가 한국 문화민주주의의 구조적 모순이다.
출판계를 사례로 보면, 사단법인 대한출판문화협회는 동일 인물의 장기 집행부 운영이 관행처럼 이어지고, 서울국제도서전 운영 및 정산 투명성 논란, 공공성이 요구되는 서울국제도서전의 사유화 문제, 박유하 씨의 출판특별공로상 수여 등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 등, 업계와 시민사회의 신뢰를 흔드는 사건들이 반복되어 왔다. 각 사안의 진위나 책임 공방을 떠나, 공적 성격을 지닌 단체에서 이와 같은 논란이 구조적으로 되풀이된다는 점은 집행부 임기 제한 부재와 견제 장치 약화, 내부 민주성 부족이 결합한 결과이다.
예를 들면, 대한출판문화협회는 홈페이지 기준(11월 11일) 1,700개가 넘는 회원사를 두고 있음에도 2023년 총회에서 131표로 회장이 선출되었고, 한국잡지협회 역시 560여 회원사 중 2025년 2월 선거에서 109표로 회장이 선출됐다.
회원사의 규모와 업계를 대표한다는 상징성에 비해 실제 득표 기반은 극히 협소해, 소수 표심이 다수의 이름을 등에 업고 권한을 행사하는 구조적 ‘과대표’ 문제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문체부 산하 및 소관 사단법인에 문화민주주의 추진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첫째, 임기 제한의 원칙이다. 대통령과 지방자치단체장, 주요 공직이 임기를 통해 권력 순환을 제도화한 것처럼, 공적 위상을 갖는 문화·출판·콘텐츠 단체 역시 합리적인 연임 제한과 총임기 상한을 가져야 한다. 이는 특정 개인과 그룹이 조직을 사실상 사유화하는 것을 막는 최소한의 장치다.
둘째, 선출 방식의 민주화다. 평일 특정 시간, 특정 장소에 직접 가야만 투표할 수 있는 방식, 소수 대의원 중심의 간선제는 지역·규모·노동환경의 제약을 받는 회원들을 구조적으로 배제한다. 따라서 문체부가 공인된 온라인 투표와 비대면 참여 방식을 도입하고, 문체부 소관 협회들이 전국 어디서든 회원이 동등한 조건에서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온라인투표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회비를 부담하는 다수의 이해와 목소리가 선거와 집행부 구성에 반영되는 것, 그것이 최소한의 정의다.
셋째, 투명성과 책임성의 제도화다. 문체부 소관 단체들은 공공사업 수행, 보조금 집행, 각종 위원회 추천과 심사 참여를 통해 사실상 정책 파트너로 기능한다. 그렇다면 선거 투표율 및 득표율 공개, 회비 및 재정 사용 내역 정기 공시, 사업 선정 기준과 평가 결과의 투명한 공개, 윤리·분쟁 사안에 대한 독립기구 연계 등 공적 책무에 상응하는 기본 전제가 되어야 한다.
정부 개입에 대한 우려가 있을 수 있지만, 선거 결과를 좌우하는 통제가 아니라, 민주적 거버넌스를 갖춘 단체만이 공적 파트너 자격을 가진다는 원칙을 세우는 일이다.
문체부는 민간 자율을 존중하되, 이러한 기준에 부합하는 단체에 정책 협력과 사업 참여에서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반복적으로 비민주적 운영과 논란을 일으키는 단체에 대해서는 관리·감독과 평가를 강화해야 한다. 공공성을 내세우면서 자율이 면책의 방패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논의는 문화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며 좌절을 겪어온 수많은 종사자들의 축적된 문제의식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회비를 내면서도 발언권을 체감하지 못하고, 누가 어떻게 단체의 대표가 되는지 모른 채 결과만 전달받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 이러한 구조는 우수한 인재를 잃게 만들고, 신뢰를 소진시키며, 결국 책문화생태계와 문화민주주의의 기반을 허물어뜨린다.
오늘 국무회의에서 논의된 체육단체에서 시작된 개혁의 원칙이 문체부 산하 모든 사단법인과 유관 단체로 확장될 때, 어렵게 버티고 있는 문화계 종사자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으며, 문화산업의 성과뿐만 아니라 문화거버넌스의 품격으로도 문화강국을 말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