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윤희(책문화생태학자, 문화평론가)

정윤희 / 문화평론가, 책문화생태학자. 사회적기업 책문화네트워크 대표, 출판저널 발행인이다. 언론학 전공으로 언론학 석사, 문화콘텐츠 전공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생태적 글쓰기를 하는 마음', '문화민주주의 실천과 가능성', '책문화생태론' 등이 있다. 
정윤희 / 문화평론가, 책문화생태학자. 사회적기업 책문화네트워크 대표, 출판저널 발행인이다. 언론학 전공으로 언론학 석사, 문화콘텐츠 전공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생태적 글쓰기를 하는 마음', '문화민주주의 실천과 가능성', '책문화생태론' 등이 있다. 

미국의 도서관들이 전례 없는 혼란을 겪고 있다. 2025년 10월 24일자 미국 공영 경제매체 Marketplace.org는 “미국 전역의 수천 개 도서관이 도서 공급 지연과 서비스 중단을 겪고 있다”며, 120년 역사를 지닌 도서 공급사 베이커앤드테일러(Baker & Taylor)가 연말을 끝으로 사업을 중단한다고 보도했다.

미국 도서관계가 가장 신뢰하던 공급망이 사실상 멈추면서 신간 도서 입수와 대출 서비스 전반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Marketplace.org는 “1903년 설립된 베이커앤드테일러는 오랜 기간 공공·학교·대학 도서관을 중심으로 6,000여 기관에 도서, 음성자료, 전자책을 공급해 왔으나 최근 물류비 급등, 인력 감축, 비용 구조 악화 등으로 경영난에 빠졌다”고 전했다.

결국 “2025년 말까지 단계적 운영 종료”를 발표했고, 수천 곳의 도서관이 급히 다른 공급사를 찾느라 비상 체제로 전환했다.

신시내티의 Cincinnati & Hamilton County Public Library는 “수개월째 도서 주문이 밀려 있고, ‘럭키데이(Lucky Day)’ 프로그램을 중단했다”고 밝혔으며, 캘리포니아의 Sacramento Public Library는 “신착 도서 입수 지연이 불가피해 디지털 자료 중심으로 임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서관의 신착 서비스는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시민의 정보 접근권과 직접 연결된 영역이다. 이번 사태는 공공 서비스가 시장 구조의 변화에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주는 단면이다.

Marketplace.org는 또한 “대형 공급사 한 곳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결국 공공기관의 업무 중단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도서관 현장은 공급망 재편에 나서며, 일부는 지역 기반 유통사 및 독립출판사와의 직접 거래를 시도하고, 또 다른 일부는 전자책(eBook)과 오디오북 중심으로 전환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물리적 책을 기다리는 시민들의 불편은 여전히 크다는 반응이 잇따르고 있다.

베이커앤드테일러 홈페이지 갈무리.
베이커앤드테일러 홈페이지 갈무리.

이번 사태는 도서관만의 문제가 아니다. 출판사, 유통사, 그리고 공공기관이 긴밀히 얽혀 있는 ‘책문화생태계(book culture ecosystem)’의 균형이 무너질 때 어떤 파급효과가 나타나는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책문화생태론적 관점에서 보면, 도서관은 단순한 수요처가 아니라 지식 공유의 순환 고리이며, 출판과 유통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공유지로 작동한다. 한 공급망의 붕괴가 곧바로 시민의 지식 접근권 제한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책이 곧 공공재’임을 다시금 확인시킨다.

한국의 상황에서도 유사한 위험이 존재한다. 공공도서관이 특정 대형 유통 플랫폼이나 서지 유통시스템에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외부 요인 하나로 전체 서비스가 흔들릴 수 있다.

따라서 도서관과 출판사가 협력하여 복수 유통망 확보, 지역 출판사와의 직거래 확대, 책문화 네트워크 기반의 공공 공동구매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경제적 대응이 아니라, 지식 접근의 민주성과 문화생태의 회복력(resilience)을 위한 전략적 조치다.

Marketplace.org가 전한 베이커앤드테일러의 폐업 소식은, 책의 물리적 유통이 단절될 때 문화의 흐름까지 멈출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한다. 도서관은 단지 자료를 보관하는 시설이 아니라, 지식의 공공성을 유지하는 생태계의 핵심 축이다.

이번 사건은 우리가 왜 도서관과 출판을 ‘공유지의 시스템’으로 바라봐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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