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민주 (도시탐험가, 리드앤리더 대표)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 컬쳐클럽 대표, 도시탐험가, 폴리매스, 강연자로 책을 읽고 '출판저널' 등에 글을 쓴다. 강연을 하면서 도시와 세상을 탐험하고 있다. '나는 도서관에서 교양을 읽는다', '세계를 이끈 경제사상 강의', '미국 대통령과 민주주의' 등 여러 책의 저자 및 번역자이다.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 컬쳐클럽 대표, 도시탐험가, 폴리매스, 강연자로 책을 읽고 '출판저널' 등에 글을 쓴다. 강연을 하면서 도시와 세상을 탐험하고 있다. '나는 도서관에서 교양을 읽는다', '세계를 이끈 경제사상 강의', '미국 대통령과 민주주의' 등 여러 책의 저자 및 번역자이다. 

필자는 서울 용산에 거주하면서 용산의 이모저모 구석구석을 열심히 돌아다니며 테마 길을 여럿 개발하기도 하였다. 이전까지만 해도 역사성이 많지 않은 다른 구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살았는데 역사성이 넘치는 용산구로 이사 오면서 필자가 사는 지역의 역사문화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용산 땅에 얽힌 역사를 훑어보기로 하자.

1. 풍수지리로 보는 용산

- 서울의 외사산, 내사산, 그리고 용산의 산 네 개

풍수지리에 의하면, 서울의 진산(鎭山)은 북한산이다. 북한산은 제일 높은 백운봉을 비롯하여 옆의 인수봉, 망경봉이 삼각형으로 이루어 삼각산이라 불리기도 했다. 남쪽에는 관악산이 자리잡고 있고, 동쪽에는 아차산보다 더 높은 용마산, 서쪽에는 행주산성이 있는 덕양산이 있다.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서울의 외사산(外四山)은 북한산, 관악산, 용마산, 덕양산을 일컫는다.

서울 도성을 더욱 안에서 감싸는 내사산(內四山)이 있다. 북악산(백악산), 남산, 인왕산, 낙산이 바로 그것이다. 북악산과 인왕산은 바위산으로 거칠지만 남산과 낙산은 푸근한 느낌이다. 남산의 봉우리는 두 개다. 남산서울타워가 서있는 봉우리가 제일 높다고 흔히 생각하지만 남동쪽의 봉우리가 20m 더 높다. 남산의 북녘은 중구이지만 남녘은 용산구다.

사람들은 ‘용산’ 하면 서울시 25개 구의 하나인 용산구라는 행정구역으로만 주로 생각할 뿐, 용산(龍山)이라는 산이 실제로 있음을 잘 모른다. 요즘은 아파트가 많이 세워져 잘 보이지 않는다. 용산구와 마포구에 경계의 산천동 조금 높은 곳에 용산성당이 자리잡고 있는데 바로 거기가 용산 봉우리다. 전철역으로 보면 6호선 효창공원앞역에서 가깝다.

고려시대 학자인 이인로는 용산에 머물면서 봉우리들이 굽이굽이 치는 모습을 보고 형상이 마치 푸른 이무기 같다고 묘사한 바 있다. 사실 이무기는 여의주를 얻지 못해 용같이 승천하지 못한 상상의 동물을 말한다. 인왕산 아래 무악재 너머 안산(무악산)으로부터 아현, 약현, 만리재, 효창공원을 거쳐 한강까지 남쪽으로 꾸불꾸불 뻗어져 오는 나즈막한 산등성이가 용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용산성당 부근의 용산에서 용이 머리를 마지막으로 들어 올리고 한강으로 숨어버린다.

용산구의 북쪽에 남산이, 서쪽에 용산이 있다면 동쪽에 매봉산이 있고, 남쪽에 둔지산이 있다. 둔지산(屯芝山)의 높이는 겨우 65.5m다. 산 네 개가 용산구를 포근하게 품고 있다. 둔지산과 한강 사이 지역은 홍수가 자주 나서 인가가 존재하지 않아, 기와를 만들던 와서(瓦署)만 있었고 군대가 훈련을 하곤 했다.

다른 풍수지리에 의하면, 용산기지 안의 국방부 신청사가 대통령 집무실로 명당이다. 북한산-북악산-인왕산-남산까지 와서 그랜드하얏트호텔, 녹사평역을 거쳐 둔지산으로 용이 꾸불거리고 오는데 그 끝에 국방부 신청사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 둔지산의 남쪽에 남향을 하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최고의 명당이라 말하기도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안에 미르폭포, 미르다리, 미르못이 있는데 용의 옛말이 바로 ‘미르’다. 믿거나 말거나 풍수지리의 해석은 이렇다.

이미지제공=김민주
이미지제공=김민주

2. 용산의 중심부를 남북으로 흘러 한강에 합류하는 만초천

용산구의 남쪽으로는 한강이 흐른다. 서울 지역을 지나는 한강은 W 모양을 하고 있는데, 가장 남쪽까지 내려간 부분이 동작대교가 놓인 용산구 지역이다. 남동쪽과 남서쪽 모두가 한강을 면하고 있어 경관이 좋다. 그래서 조선시대에 누정과 독서당, 부군당이 용산구 한강변에 많았다. 용산구 한강변의 유명한 누각과 정자로는 심원정, 제천정, 천일정, 읍청루, 담담정, 삼호정, 사의정 등 많았다. 현재는 정자의 원형 모두 사라졌다. 나는 용산구 외에 효사정, 용양봉저정, 낙천정, 화양정, 망원정, 소악루 등 서울 한강변의 다른 정자들도 탐사해 보았는데 모두 전망이 좋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용산구 서쪽의 가파른 절벽 위에 서있던 담담정은 안평대군 소유로, 한강 물길에 배를 띄어 놓고 풍류를 즐겼는데 계유정난 후에 세조가 이 담담정을 신숙주에게 하사했다. 세종이 뛰어난 신하들에게 휴가를 주어 책을 읽도록 하는 사가독서제를 실시했는데, 성종 때 청암동에 남호독서당을, 중종 때 옥수동에 동호독서당을 조성해 이곳에서 학문에 정진토록 하였다.

한양의 각 관아에는 기우제도 지내고 마을의 안녕을 기리기 위해 신령을 모시는 사당으로 부군당(府君堂)을 두었는데 한강변에 주로 세워졌다. 한강을 드나드는 배들이 사고로 침몰하지 않기를 빌기 위해서였다. 용산구에서는 서빙고동 부군당, 산천동 부군당, 용문동 부군당, 보광동 부군당, 이태원 부군당(역사공원)이 유명하다. 용문동 부군당은 남이장군 사당으로, 보광동 부군당은 김유신 장군 사당으로 불리기도 한다. 서빙고동 부군당은 태조 이성계를 주신으로 모셨다.

한강으로 흐르는 하천이 없을 리 없다. 인왕산과 안산(무악산) 사이의 무악재에서 남쪽으로 만초천(蔓草川; 넝쿨내)이 흐른다. 하천 주위에 넝쿨이 많다는 의미다. 일제강점기에는 하천 이름을 욱천(旭川; 아사이가와)으로 바꾸었는데 만초천으로 원상회복되었다.

하지만 1966년부터 하천을 복개해서 지금은 물 흐름을 볼 수 없다. 용산기지 안에 만초천의 지류가 일부 보일 뿐이다. 서울역 서편에서 시작해 용산전자상가를 거쳐 원효대교까지 이어지는 청파로 아래에 만초천이 흐른다. 송강호, 배두나 출연, 봉준호 감독의 2006년 영화 '괴물'에서 끔찍한 괴물은 바로 청파로 아래에서 숨어 살다가 원효대교 북단에서 한강으로 뛰어 나온다.

용산의 풍수지리 (이미지 제공=김민주)
용산의 풍수지리 (이미지 제공=김민주)

3. 용산의 유구한 역사

- 성저십리의 하나였던 용산방

조선시대에는 사대문 안이 한성이었다. 하지만 인구가 늘면서 사대문 밖 성저십리 (城底十里, 10리가 4km에 해당)가 한양에 편입되면서 숭례문 밖에 한강을 접하고 있는 용산 구역도 한성부에 들어왔다.

조선 후반에 용산방(龍山坊)과 둔지방(屯芝坊)이라는 행정구역이 있었다. 용산방이 현재 용산구에 해당될 것 같지만 당시 용산방은 현재 용산구의 서부와 마포구의 동부에 해당되었다. 용산방과 둔지방의 경계가 만초천이었다. 당시 만초천은 배가 숭례문 가깝게 들어가는 중요한 수상교통로였기 때문이다. 이 부근의 나루터가 마포나루터다. 지방에서 세금으로 곡식과 특산품을 보내오는 세곡선이 드나들었기에 경강상인들이 큰 돈을 벌었다. 한강을 끼고 경기·충청 일대에서 활약하던 상인을 경강상인(京江商人)이라 불렀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사람들이 숭례문을 나와 남쪽으로 가는 큰길은 두 개였다. 삼남로와 영남로인데 모두 용산을 거쳐 한강을 건넜다. 삼남로는 만초천의 청파배다리를 거쳐 삼각지와 동작나루(동작대교 북단)를 거쳐 한강을 건넜고, 영남로는 후암동과 이태원을 거쳐 한남나루(한남대교 북단)를 이용했다.

- 용산에 주둔했던 외국군대

용산의 지리적 이점이 상처의 원인으로도 작용했다. 몽골, 일본, 중국, 미국 군대가시기를 달리하며 군대를 주둔시켰다. 용산에 얽힌 군대와 전쟁 이야기를 보려면 한희숙이 쓴 '용산 속의 전쟁사와 군사문화'를 읽으면 좋다.

13세기 중반에 고려를 유린한 몽골군은 용산에 병참기지를 만들더니, 16세기 말 임진왜란 때에는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는 각각 용산의 원효로4가와 청파동 일대에 주둔했다. 1882년 임오군란 이후에는 23세 나이에 한성 방위 책임자(참사관)로 부임한 청나라의 위안스카이(원세개)는 오장경과 함께 이곳에 주둔했다. 청군이 임오군란을 평정하자 대원군이 이 군영으로 답방하러 왔다. 그러자 위안스카이는 대원군을 군함으로 압송해 톈진에 연금해 버렸다. 위안스카이는 용산을 거점으로 14년간 주둔하면서 사령관으로 조선 내정에 사사건건 간섭했다. 나중에 청나라를 멸망시키고 중화민국 임시 대총통과 중화제국 황제도 잠시나마 3개월 했었다.

1882년 임오군란 후에 제물포조약이 체결되면서 내륙에 외국인의 상업 활동을 허용하면서 양화진에 이어 1884년 용산에 개시장이 지정된다. 외국인의 거주와 통상이 시작된 것이다. 1886년에는 프랑스와의 조불수호통상조약에 따라 선교의 자유가 인정되면서 용산은 외국인들의 상업과 종교활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1894년 청일전쟁이 발발해 위안스카이가 청나라로 줄행랑을 치자 일본 육군 6천여 명은 용산의 만리창에 본부를 두고 효창원과 아현리에 주둔하였다. 일본은 제임스 모스로부터 경인선 부설권을 인수하여 1900년에 한강철교를 만들어 인천과 경성을 연결하는 경인선 철도를 운행한다.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군은 고종을 협박해 한일의정서를 맺고 용산에 300만 평에 이르는 부지를 둔지방에 강제수용한다. 하지만 주민들의 강렬한 저항에 부딪혀 군용지 면적은 118만 평으로 줄어들었다. 둔지미 마을에 오랜 기간 거주했던 주민들은 강제 퇴거되어 보광리(현재 보광동)로 눈물의 이주를 해야만 했다. 보광리의 원래 이름은 보강(保江)이 흘러서 보강리였다.

일본의 한국 진출 이후 경인선, 경의선, 경원선 철도가 연달아 만들어지면서 용산역이 철도의 허브로 부상하고 1906년부터 일본군의 군사기지화 되면서 서쪽의 구용산에 대비하여 신용산이 형성된다. 일본 군인은 물론이고 일본 일반인들도 여기에 자리잡으면서 왜색이 매우 짙어진다. 아직도 한강변 이촌동에는 일본인 거주자가 많다. 일제는 이곳에 조선군사령부를 설립하는데 남영동 지명도 조선군사령부의 남쪽에 병영이 있어서 생겨난 이름이다.

광복 후 1945년 9월부터는 미국은 일본군 주둔지를 인수해 미군기지를 조성했다. 한국 정부는 미국과 2002년 연합토지관리계획, 2004년 용산기지이전협정에 합의하며 본격적인 이전이 추진되었다. 원래는 2008년까지 이전을 마무리하기로 했으나 미루다가 2017년부터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로 이전한다. 앞으로 주한미군의 심장부인 한미 연합군사령부가 평택으로 가면 용산기지 시대는 완전히 종결된다. 하지만 토양 오염 정화 문제 해결 등 현안들은 여전하다. 이렇게 주한미군 이전이 마무리되면 용산은 완전히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3. 용산의 지명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

알고 보면 모든 지명에는 역사성이 스며들어 있다. 용산구의 길, 동, 마을, 공원 이름의 어원을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에서 찾을 수 있다. 

- 해방촌 신흥로, 경리단길, 용리단길

용산구의 이름난 동네 중에 해방촌이 있다. 행정구역으로 보면 용산2가동과 후암동 고지대를 일컫는데 해방과 더불어 형성된 마을이라 하여 해방촌이다. 이북에서 넘어온 실향민들이 대거 들어와 이곳 판자집에서 열악하게 살았다. 이후 급격한 도시화로 지방에서 상경한 사람들도 이곳에 몰려들었다. 한마디로 달동네였다.

1960년에 나온 영화 '오발탄', '박서방', 1963년에 나온 영화 '혈맥'을 보면 판잣집이 넘치던 해방촌의 열악한 정경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 '오발탄', '혈맥'은 비극적 요소가 많지만 그래도 '박서방'은 희극적 요소가 많다. 세 편의 영화들을 보면 당시 이름을 날리던 배우였던 김승호, 황정순, 김진규, 엄앵란, 최무룡, 문정숙, 윤일봉, 조미령, 황해, 김혜정, 최남현, 주선태, 신성일, 김지미의 연기를 볼 수 있다. 소설로는 이범선의 '오발탄', 강신재의 '해방촌 가는 길'이 있다.

해방촌에는 외국인들도 많이 살았는데 이제는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이전되면서 외국인 거주자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대신 이곳의 신흥로가 새로운 상권으로 뜨면서 캐쥬얼한 식당, 카페, 바들이 많이 들어섰다. 특히나 해방촌에는 높은 건물이 없어서 전망이 좋아 루프탑 식당에서 멋진 도심 풍경을 즐길 수 있다. 녹사평대로 건너편의 경리단길의 인기가 한때 많았으나 점포 임대료가 크게 올라 건너편 해방촌오거리와 신흥으로 상권이 이동한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한강대로의 신용산역과 삼각지역 사이에 용리단길도 새로 떴다. 물론 이태원역 부근의 이태원 상권은 전성기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하다.

- 청파동, 남영동

청파동, 청파동의 청파(靑坡)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청파는 한자어로 푸른 언덕이라는 의미다. 청파는 조선시대에 세종 때 대사헌까지 오른 대신, 기건(奇虔)의 호다. 청파 지역에 오래 살았던 그는 집에서 대궐까지 가마를 타지 않고 걸어 다녔을 정도로 청빈했다. 그리고 세조 등극 후 벼슬을 꺼리고 조정제 진출하지 않았다.

우리가 잘 아는 나도향의 단편소설 '벙어리 삼룡이'의 배경이었던 연화봉(蓮花峰)이 청파언덕이다. 지금 서울역에 해당되는 병조 직할의 파발역이 숙명여대 근처의 청파역이었다. 현재 청파역의 흔적은 하나도 남겨져 있지 않아 복원이 절실하다.

청파동에서 가까운 남영동은 1호선 남영역 근처다. 1976년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제는 경찰청 인권센터로 변모했다. 남영동 이름은 서울 남쪽인 이곳에 군영(軍營)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군이 여기에 군영 연병장을 설치하고 지역 이름으로 연병정(練兵町)이라 지었는데 해방 후 남영동으로 바뀌었다.

요즘 우리나라에는 정식도로가 아니라 명예도로가 여럿 생겼다. 예를 들면 4호선 숙대입구역에서 숙대 정문까지 길은 정식으로는 청파로47길인데, 별칭으로는 순헌황귀비길이다. 순헌황귀비(純獻皇貴妃)는 우리가 엄귀비, 엄상궁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숙명학교, 진명학교, 양정학교를 설립하였다. 숙명여대 내 백주년기념관 1층에 있는 숙명역사관에 가면 여성 교육, 여성 운동의 발전사를 살펴볼 수 있다. 숙명학교 출신으로 광복군 출신의 안영희, 일제강점기 시대에 간호사들의 독립운동단체인 ‘간우회’를 설립한 박자혜가 있다. 순헌황귀비길 근처에는 식민지역사박물관이 있으며 선린인터넷고등학교에도 역사관이 있다. 소파 방정환이 이 고등학교 출신이다.

용산구의 여러 행정동 (이미지 제공=김민주)
용산구의 여러 행정동 (이미지 제공=김민주)

- 외국인들이 많이 살던 용산구

주한외국대사관이 용산구에 매우 많다. 서울에 85개 대사관이 있는데 용산구에 거의 절반인 40개가 자리잡고 있다. 아시아 8개, 중동 8개, 아프리카 11개, 유럽 10개, 중남미 3개다. 동으로 보면 한남동 22개, 동빙고동 11개, 이태원동 6개, 서빙고동 1개이다. 유엔빌리지와 외교통상부 장관 공관도 한남동에 있다. 한강과 남산의 사이에 있어서 한남(漢南)동이다. 경관이 수려해 정자도 많았고 일본군 고급장교 관사, 주한 유엔군과 외국인 기술자들을 위한 주거지가 일찍 조성되었다. 이태원역에 가까운 한남동에는 한국이슬람교 서울중앙성원이 1976년에 생겼다. 한국전쟁 당시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참전한 터키인 형제가 발족시킨 한국이슬람교협회가 계속 커졌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은 한남동 외에도 이태원동, 이촌1동(동부이촌동), 서빙고동을 중심으로 많이 거주했다. 대사관과 외국인학교가 가까웠던 것이다. 이태원을 한자로 ‘배나무 이(梨)’로 쓰기도 하지만 ‘다를 이(異)’로 쓰는 이유도 그런 역사적 배경이 있다. 이태원에는 1997년에 관광특구로 지정되어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 주최로 이태원지구촌축제가 매년 열려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해방 이후 1965년 한일국교정상회담 체결 이후 일본인들은 사업 기회가 크게 늘자 이촌1동에 많이 들어와 살았고 아직도 많다. 서빙고동은 이촌1동의 바로 동쪽이다.

- 용산구의 길과 고개, 기념관

용산구 길 이름을 열거해 보자. 한강대로, 녹사평대로, 한남대로 같은 큰길 외에 후암로, 두텁바위로, 이태원로, 청파로, 원효로, 효창원로, 백범로, 임정로, 우사단로, 소월로, 장문로, 보광로, 서빙고로, 신흥로 등 다양하다. 용산구에 있는 전철역은 모두 13개다. 길 이름, 전철역 이름을 보면 그 지역의 역사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용산구에는 용산역사박물관, 전쟁기념관, 백범김구기념관, 국립중앙박물관, 남산도서관, 용산도서관을 비롯하여 가볼 만한 곳이 많다.

지금은 훌쩍 넘기 때문에 고개라 할 수 없는 고개들이 예전 용산에는 여기저기 많았다. 버티고개, 두텁바위고개, 송경재, 우수재, 새창고개, 당고개, 와현, 서빙고고개, 서문고개 등등. 이런 고개를 일부러 찾아가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걸어보며 당시 분위기를 느껴보는 것도 의미있다.

코로나 시기 이전에 한국을 방문했던 외국인 대상으로 어떤 공간이 가장 만족도가 높았는지 설문조사를 했더니 전쟁기념관이 1위로 나온 바 있다. 이처럼 외국인에게는 아직도 우리나라를 한국전쟁과 연계하곤 하며 그래서 전쟁기념관을 많이 찾아갔던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전시와 경관도 훌륭하지만 바로 인근의 용산가족공원과 함께 산책하기가 매우 좋다. 백범김구기념관에 가면 자신도 모르게 애국심이 솟구친다.

4. 함께 읽으면 좋을 책

- 용산팔경과 신용산팔경

용산 지역은 고려시대 때부터 눈독을 들이던 곳이었다. 고려 말 이색은 용산을 둘러보고 뛰어난 8가지 경치를 ‘용산팔경(龍山八景)’으로 읊은 바 있다.

청계산의 아침구름

관악산의 저녁안개

욱천의 게 잡는 불빛

동작진으로 돌아오는 돛단배

밤섬의 저녁노을

흑석동으로 돌아오는 스님

이촌동의 저녁 풍경

노량을 지나는 길손

하지만 이제 옛 정경을 그대로 즐길 수 없다. 도로와 철도가 생기고, 하천이 없어지고 높은 건물들이 많이 솟아 경관이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바뀐 환경을 반영하여 ’신용산팔경(新龍山八景)’을 새롭게 읊어야 할 때다.

필자는 용산구의 구석구석을 탐험하고 여러 도보길을 개척한 바 있다. 예를 들면 후암길, 청파길, 순례길, 만초천길, 철도(경의중앙선)길, 독서당길, 이태원길, 용산기지길, 남산길, 소월길, 보광길(대사관길), 해방촌길, 한강공원길 등 너무 많다. 여러분도 이런 길들을 두 발로 뚜벅뚜벅 걷고서 뛰어난 경치 8군데를 손수 골라 ‘신용산팔경’ 시를 멋지게 써보면 어떨까?

- 참고하면 도움이 될 책

앞서 간간이 소개한 책들 외에 용산문화원에서 나온 심도 있는 시리즈 책 '용산향토사료편람'을 보면 좋다. '용산과 함께한 역사인물', '한강이 꽃피운 용산의 역사와 문화', '용산 속의 전쟁사와 군사문화',  '용산의 종교 문화', '남산의 어제와 오늘'이 해당된다. 일본군의 땅 강제수용에 따른 둔지미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보려면 김천수가 쓴  '용산기지 내 사라진 둔지미 옛 마을의 역사를 찾아서'가 좋다. 독자의 이해에 도움 되는 지도도 풍부하다.

용산구에 위치한 숙명여대는 2017년에 숙명인문학연구소를 설립했는데 이 안에는 용산인문학 연구팀이 있어서  '터로 보는 용산의 생활사'를 2019년에 출간한 바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역사성이 짙은 동들을 심층 연구 하여 책자를 연달아 출간하고 있는데. 용산구에 해당되는 책으로는 '후암동', '청파·서계'가 있다.

용산의 역사를 보려면 예전 사진이나 지도, 도표를 원본 그대로 보면 좋다. 이런 수요를 충족시켜주는 책으로는  '용산을 그리다', '사진과 지도, 도면으로 본 용산기지의 역사 1,2,3'이 있다.  '용산을 그리다'는 1890년부터 2014년까지 용산 관련 사진들을 모은 사진집이다. 이외에 용산의 이모저모를 다니며 쓴 에세이도, 용산을 배경으로 한 소설도 여럿 있다.

- 김민주 북큐레이터가 추천하는 ‘용산’ 관련 도서

터로 보는 용산의 생활사 /  이순자 외 지음, 숙명인문학연구소, 2019년

용산기지 내 사라진 둔지미 옛 마을의 역사를 찾아서 / 김천수 지음, 용산구청 문화체육과, 2017년

후암동: 두텁바위가 품은 역사, 문화주택에 담긴 삶 / 서울역사박물관, 2016년

청파·서계: 서울역 뒷동네 / 서울역사박물관, 2017년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이광호 에세이 걸어본다 1:용산 / 이광호 지음, 난다, 2014년

오발탄 / 이범선 지음, 문학과지성사, 2007년

해방촌 가는 길 / 강신재 지음, 민음사, 2019년

벙어리 삼룡이, 나도향 지음, 문학과지성사, 2014년

용산과 함께한 역사인물 / 정병삼, 박종진, 한희숙 지음, 용산문화원, 1999년

한강이 꽃피운 용산의 역사와 문화 / 용산문화원, 2000년

용산 속의 전쟁사와 군사문화 / 한희숙 지음, 용산문화원, 2001년

사료로 보는 용산의 역사 / 한희숙 지음, 용산문화원, 2003년

남산의 어제와 오늘 / 박종진, 김종은, 천지명 지음, 용산문화원,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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