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윤희 (책문화네트워크 대표, 문화평론가)

 

영국 일간지 가디언(6월 22일자)에 따르면, 한때 책에 낙서하는 행위로 여겨져 독서 예절에 어긋난다고 간주되던 ‘마지날리아(marginalia)’가 최근 북톡(BookTok)과 북스타그램(Bookstagram)을 중심으로 독서 트렌드로 확산되고 있다.

단순한 낙서가 아니라 책 속에 감정과 해석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방식이 독서 경험을 확장하는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다.

북톡 이용자들은 책의 가장자리에 직접 메모를 남기거나, 형광펜과 색상별 탭을 붙여 특정 장면과 감정을 표시한다. 예컨대 분홍색은 로맨틱한 순간, 파란색은 복선, 노란색은 주요 대사를 의미하는 식이다.

멜버른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 마르셀라는 “사라 제이 매스(Sarah J. Maas)의 판타지 시리즈처럼 여러 번 읽을 책에는 색상 코드와 주석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며, 독서 기록이 재독 과정에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이 같은 흐름은 로맨스와 로맨타지 장르의 인기가 견인하고 있다. 알리 헤이즐우드(Ali Hazelwood)의 『The Love Hypothesis』, 매스의 『A Court of Thorns and Roses』, 에밀리 헨리(Emily Henry)의 소설들이 북톡에서 독자들의 자발적 주석 문화를 촉발한 대표적 사례다.

디킨대학 조디 맥앨리스터(Jodi McAlister) 교수는 “과거 저평가되던 로맨스 장르가 마지날리아를 통해 독자에게 ‘개인적이고 소장 가치가 있는 오브제’로 재탄생하고 있다”며, 책이 단순한 소비재를 넘어 창의적 체험의 매개로 변화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마지날리아는 개인적 성찰의 기록일 뿐 아니라 공동체적 소통의 도구로도 활용된다. 미국 작가 앤 패쳇(Ann Patchett)은 『Bel Canto』 주석판을 통해 “처음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패턴을 주석을 통해 발견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독자들 사이에서는 주석이 담긴 책을 친구에게 선물하거나, 중고서점에서 타인의 흔적이 담긴 책을 찾는 문화가 형성되며 새로운 ‘공유 독서 경험’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책을 단순히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독서 행위 자체를 창작적 활동으로 확장하는 세계적 흐름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빠르게 소비되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주석은 독서를 의도적으로 느리게 만들며, 책의 여운과 의미를 더 오래 붙잡아 두는 장치가 되고 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책을 깨끗하게 보존하는 독서 문화가 강하다. 그러나 최근 청소년과 20대 독자층 사이에서도 밑줄 긋기, 메모 남기기, 독서 다이어리 작성 등이 확산되는 추세다. 북톡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확산된 해외의 마지날리아 열풍은 한국 독서문화에도 새로운 자극을 줄 수 있으며, 향후 출판사와 서점, 도서관이 ‘독서 기록’을 지원하는 상품과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데 참고할 만한 흐름이다.

출처: The Guardian, “Marginalia mania: how ‘annotating’ books went from big no-no to BookTok’s next trend”, 2025년 6월 22일자.

정윤희 책문화네트워크 대표. 문화평론가로 칼럼을 쓰고 있으며, 책문화생태학자로서 지속가능한 책문화생태계를 연구하고 확산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언론학 전공으로 언론학 석사, 문화콘텐츠 전공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12기 국회입법지원위원, 경기도광역도서관위원회 위원, 한국출판학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책문화생태론', '문화민주주의 실천과 가능성', '생태적 글쓰기를 하는 마음' 등이 있다.  
정윤희 책문화네트워크 대표. 문화평론가로 칼럼을 쓰고 있으며, 책문화생태학자로서 지속가능한 책문화생태계를 연구하고 확산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언론학 전공으로 언론학 석사, 문화콘텐츠 전공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12기 국회입법지원위원, 경기도광역도서관위원회 위원, 한국출판학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책문화생태론', '문화민주주의 실천과 가능성', '생태적 글쓰기를 하는 마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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