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윤희 (책문화네트워크 대표)

정윤희 책문화네트워크 대표. 문화콘텐츠 및 문화정책 전문가이다. 건국대에서 문화콘텐츠 전공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출판, 도서관, 독서분야의 자문활동을 하고 있다. 책문화생태학자로서 '책문화생태론', '문화민주주의 실천과 가능성', '생태적 글쓰기를 하는 마음' 등의 여러 권의 책을 썼다.
정윤희 책문화네트워크 대표. 문화콘텐츠 및 문화정책 전문가이다. 건국대에서 문화콘텐츠 전공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출판, 도서관, 독서분야의 자문활동을 하고 있다. 책문화생태학자로서 '책문화생태론', '문화민주주의 실천과 가능성', '생태적 글쓰기를 하는 마음' 등의 여러 권의 책을 썼다.

 

인공지능은 이제 출판의 중심으로 들어오고 있다. 2025년 7월 25일, 26일 이틀간 열린 ‘제2회 지산학연 혁신 포럼’은 AI 시대 출판산업의 가치와 비전을 묻고 방안을 마련하는 자리였다.

인문사회와 기술, 법과 산업을 넘나든 이 포럼은 ‘AI 플레이어’라는 새로운 창작 주체와 ‘전자출판 생태계’라는 전략 키워드를 통해 한국 출판의 방향을 가늠하게 했다.

전주대학교 HUSS사업단 이용욱 단장은 기조강연에서 “이제 창작자는 단순한 생산자나 소비자가 아니라, 질문하고 편집하며 퍼블리싱까지 주도하는 ‘AI 플레이어’로 진화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생성형 AI와 협업하는 이들은 편집자이자 기획자, 기술 사용자이자 큐레이터로, 콘텐츠 제작의 경계를 허문다. 이용욱 교수는 디지털 퍼블리싱 융합학부와 같은 전공 신설이 필요하며, 질문 능력, 맥락 민감성, 메타인지 역량을 갖춘 융합형 인재의 교육이 AI 시대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포럼에서 필자는 패널 토론자로서 AI 시대 지속가능한 책문화생태계 조성을 위한 세 가지 원칙을 제안했다.

첫째, AI 환경에서 국가적·지역적 차원의 출판 철학과 비전 정립이 선행되어야 한다.

둘째, 시대적 흐름에 맞는 법·제도·인재양성을 아우르는 정책 환경의 구축이 필요하다.

셋째, 현장에서 성장하는 출판활동과 종사자들이야말로 산업의 실제적 원동력이다.

이 세 요소가 상호작용을 통해 선순환 구조를 만들 때, 출판은 기술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가질 수 있다.

특히 한국은 현재 단 한 곳의 대학에도 ‘출판학과’가 존재하지 않는다. 출판산업은 존재하지만 이를 학문적으로 뒷받침하는 토대가 부재한 것이다. 현장에 투입되는 실무인재 양성과 출판산업의 미래를 대비하는 연구인력(석사 및 박사, 박사 후 과정) 양성이 필요하다. 이로 인해 출판산업이 체계적 성장 기반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정책적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인공지능 시대에 걸맞은 융합형 출판 전문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정부가 대학 내 출판학과 신설과 교육과정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런 현실에서 전주대학교가 선제적으로 출판전공을 개설하고 오늘과 같은 포럼을 개최하여 매우 반갑고 감사하다.

출판은 지식생산과 콘텐츠 유통이라는 공공적 역할과 동시에, 시장성과 경제성을 갖춘 산업이다. 콘텐츠를 상품화해 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은 경제적 수익과 사회적 의미라는 두 축이 공존하며, 특히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한 공공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

이와 관련해 공공대출보상제도는 중요한 과제다. 공공도서관에서 책이 대출될 때 저자나 출판사에 일정한 보상이 주어지는 이 제도는 유럽 다수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학술출판물을 대상으로 우선 도입을 시도해 볼 필요가 있으며, 도서관계와의 협력을 통해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공공성과 산업성이 결합된 사례로서, 출판생태계 전반의 균형 발전을 위한 정책 수단이 될 수 있다.

AI 시대에 더욱 중요한 것은 비판적 독서력과 디지털 리터러시다. 독자는 더 이상 수동적 소비자가 아니라, 맥락을 읽고 사실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는 청소년을 비롯한 시민의 문해력 향상과 직결되는 문제이며, 국가 차원의 독서 정책 강화가 요구된다. 따라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협력해 문해력 중심의 독서 진흥정책을 추진해야 하며, 이를 조율하고 통합하는 국가 독서기구의 설립도 검토해야 한다.

AI는 위협이 아니라 기회다. 그러나 그 기회를 공공의 이익으로 전환하기 위해선 제도, 교육, 정책, 윤리가 함께 따라야 한다. 우리는 지금 ‘출판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다시 정의하는 시점에 와 있다.

아울러 출판의 개념 역시 확장되어야 한다. 전통적인 종이책 출판에서 전자책, 오디오북, 인터랙티브 콘텐츠로의 진화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출판의 정체성과 범주를 재구성하는 문제다. 출판은 이제 단지 종이책 제작을 넘어선, 모든 미디어를 포용하는 콘텐츠 비즈니스로 진화하고 있다. 출판이라는 개념이 확장되는 지금, 그 변화의 흐름 속에서 산업적 전략과 인재 양성 시스템, 정책적 뒷받침이 함께 따라야 한다.

한편, 정책의 지속성 역시 지적되어야 할 문제다. 과거 정부가 추진했던 전자책 전문인력 양성 사업은 경기대학교에서 석사과정 중심으로 운영되었으나, 몇 해를 가지 못하고 중단됐다. 산업의 미래는 결국 인재에 달려 있다. 우수한 인재를 많이 확보하는 산업군이 살아남는다. 이를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단기적 성과 중심의 접근이 아닌, 장기적인 생태계 구축과 인재양성 전략에 집중해야 한다.

K-컬처를 이끌어갈 핵심 콘텐츠로서 K-BOOK의 전략을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AI 시대를 선도하는 출판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콘텐츠 기획부터 기술, 유통, 교육, 해외 진출까지를 포괄하는 거버넌스로 ‘K-BOOK 전략위원회’ 설립이 필요하다. 이 위원회는 산업계와 학계, 공공기관이 함께 참여해 미래형 출판 전략을 논의하고 실행하는 범국가적 협력체로 작동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출판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다시 정의하는 시점에 와 있다. 그것이 이 시대 출판인의 질문이자 우리가 지켜야 할 지식생태계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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