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를 그린다고 하니 드가가 불같이 화를 내며 비난을 퍼붓더군요. 나는 더욱 힘이 나서, 무슨 일이 있어도 벽화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지요.”
- 메리 커샛이 친구 루이진 해브마이어에게 보낸 편지, 1892년

1893년은 메리 커샛(카사트)에게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그의 예술이 고향 미국으로 귀환한 해이자 파리에서 성공에 ‘도달’한 해였다. 그해 커샛은 시카고 박람회에 전시된 대형 벽화  '현대 여성'으로 미국 대중 앞에 등장했다.
그리고 1893년 11월 파리의 폴 뒤랑뤼엘 갤러리에서 열린 첫 개인전에서 100점이 넘는 작품을 전시했다. 전시회 도록에서 미술 비평가 앙드레 멜르리오는 이렇게 결론내렸다.
“진심으로 말하건대, 현재 미술가 중에 고귀하고 개성 있고 탁월한 이를 꼽자면 휘슬러와 커샛밖에 없을 것이다.”
커샛의 걸작이자 19미터 너비의 대작 '현대 여성'은 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을까? 작품은 파괴되었을까? 박물관 지하실에 묻혀 있을까?
여성 예술가와 남성 예술가 사이의 불균형은 지금도 여전하고, 그로 인한 오해도 여전하다. 커샛의 작품은 수십 년 동안 전형적으로 ‘여성적인’ 작품, ‘다과와 옷, 아이 방’을 그린 작품으로 무시되었다.
'메리 커샛: 현대 여성을 그린 화가'는 미국에서 태어나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한 예술가 메리 커샛을 더 깊이 이해하도록 돕는다. 메리 커샛은 파리 인상주의 그룹의 일원으로서 동시대인들의 깊은 존경과 사랑을 받은 화가다.
커샛의 모더니즘은 현대 예술과 현대 여성의 창조적 교차점을 이해하는 데 대단히 중요하다. 그의 100여 년 전 그림은 21세기 들어 재조명되며 미국과 유럽에서 새로운 관객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1904년 영국의 미술비평가 윈포드 듀허스트는 당대 프랑스 미술을 소개한 영향력 있는 책 '인상주의 회화: 발생과 발달'에서 인상파를 ‘독립적인 동료 화가’들이 모인 혼성 그룹이며 최초의 평등주의적 미술운동 가운데 하나라고 소개했다. 그는 이 운동에 참가한 여성 세 사람을 언급했다. 베르트 모리조와 에바 곤살레스, 메리 커샛이다. (17쪽)

메리 커샛은 당대 아방가르드 화가들(요즘은 인상파라고 뭉뚱그려 부르는)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영향을 주고받았다. 특히 “여기 나처럼 느끼는 사람이 있다.”고 메리 커샛을 소개한 에드가 드가의 집에선 그의 사후 90여 점의 메리 커샛 판화 작품이 발견되기도 했다.
미술사학자 이주은(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은 그리젤다 폴록과 이 책의 영향을 이렇게 요약한다.
“20세기 후반 미술사의 패러다임을 바꾼 미술사학자를 들라고 하면, 나는 린다 노클린과 그리젤다 폴록의 이름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노클린 덕분에 비로소 인류의 반을 차지하는 여성의 관점이 제외된 미술사는 불완전하다고 깨닫게 됐다. 이어서 폴록 덕분에 우리는 여성 미술가의 작품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어떻게 다른 각도에서 읽을 수 있는지 방법을 배우게 됐다. … 폴록의 글을 읽고 나면 커샛이, 독자적인 미술 재능가가 아닌 미술사의 흐름 속에 놓인 영향력 있는 당대의 화가였음을 알게 된다.”

도서정보  :  그리젤다 폴록 지음  |  강경이 옮김  |  에이치비 프레스  |  320쪽  |  값 2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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