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기후위기 막는 해결사 될까
아니면 기후악당이 될까, 기로에 서다
인공지능이 앞에서는 기후재난을 막아주고 에너지의 효율적 이용을 도와주면서도, 뒤로는 막대한 컴퓨터 자원과 에너지를 소모하여 지구생태계와 기후에 악영향을 주는 양면적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기후를 위해 인공지능은 더 좋아지고 커져야 하는가, 아니면 적절하게 절제되고 제한되어야 하는가? 이 책은 우리 사회가 새롭게 직면한 거대한 딜레마와 관련해 세계 각국의 동향을 살펴보면서 우리나라의 현재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한다.
디지털전환이라는 거대한 물결이 우리 사회를 뿌리부터 변화시키고 있는 한편에서 생태전환이라는 문명 수준의 변화가 미래 삶을 규정하려 한다. 두 전환 맨 앞에 인공지능과 기후위기가 있다. 인공지능이 기후위기에 도움이 되리라는 맹목적 기대나, 반대로 위기를 심화시킬 거라는 선험적 우려를 넘어, 두 전환이 균형을 이루며 사회와 생태계에 도움이 되도록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인공지능과 기후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는 지금 우리가 하는 선택과 행동에 달려 있다.
이 책은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디지털전환과 기후위기 대응으로 대표되는 생태전환이 한국 사회에 미칠 사회-생태적 영향에 대해 통합적으로 접근하고 상호영향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려는 최초의 시도다. 지금까지 디지털전환과 생태전환을 따로 접근하고 별개로 대응해왔던 관행에서 벗어나려 한 것이다. 동시에 지금까지의 학문적 성과와 구체적 데이터에 기반해서 두 전환이 서로 균형을 이뤄서 사회와 생태계에 도움이 되도록 새로운 길을 찾고자 했다. 만약 여기서 해답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면 인공지능이 과연 기후위기 해결의 구원투수가될지 아니면 반대로 기후악당이 될지에 대한 판단과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전기 먹는 하마 AI가 기후위기 해법이라는 장밋빛 전망
일찍부터 실리콘밸리 빅테크들은 디지털과 인공지능 기술이 기후위기 해법이라고 주장해왔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이 2030년까지 글로벌 온실가스 배출량의 5~10%를 줄일 수 있음은 물론, 기후재난에 대비하고 회복력을 향상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식의 보고서들도 쏟아져 나왔다. 인공지능이 기후위기 해법이라는 주장들이 현재 미디어와 여론을 지배하는데, 샘 알트먼이나 일론 머스크 같은 경영자들이 쏟아내는 낙관적인 미래 예측을 시민들은 정치인이나 학자들보다 오히려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디지털과 인공지능 혁신이 오히려 지구와 기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주장도 꽤 나오고 있고, 불행하게도 인공지능의 생태적 악영향 우려는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특히 2022년 말 등장한 생성형 인공지능과 데이터센터 폭증이 ‘전기 먹는 하마’로 알려지면서 인공지능의 막대한 에너지 수요가 미디어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급팽창하는 데이터센터는 규모가 클 경우 100메가와트 이상의 전력용량을 요구하는데, 이를 위한 연간 전력 소비량이 전기자동차 약 35만~40만 대에 필요한 전력과 맞먹을 정도다. 아일랜드는 자국에 유치한 데이터센터가 2024년 기준 전체 국가 전력 소비량의 20%를 잡아먹을 정도로 막대했고, 2026년에는 전체 전력수요의 32%까지 잠식할 수 있다는 충격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2023년 12월 말 기준으로 국내에는 153개의 데이터센터가 있다. 이를 가동하기 위해 1기가와트급 대형 발전소 2기 이상의 발전용량을 데이터센터에 내주고 있는데 2029년까지 새로 요구되는 데이터센터 수요가 무려 700개를 넘을 것이고 이를 위해 막대한 추가 전력이 필요하다는 전망이다. 2023년 재생에너지 비중이 9.2%밖에 안 되는 한국의 경우, 전력수요 증가는 더 많은 석탄과 가스 발전의 수요로 연결되고 이는 곧바로 온실가스 증가로 이어진다. 이런 추세가 확대된다면, 기후위기 최대 주범이 인공지능과 이를 지원하는 ‘데이터센터’로 옮겨갈 공산이 크다.
딥시크의 효율성도 트럼프 정부 투자계획도 위기를 막을 수 없다
기업들 사이의 경쟁을 넘어 국가들 사이에서도 대규모 투자 경쟁에 들어가고 있어 인공지능으로 인한 전력수요는 한층 커질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5천억 달러의 대규모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구축 프로젝트인 ‘스타게이트 합작회사’ 계획을 직접 발표했다. 한국 정부도 2025년 1월 최대 2조 원 규모의 ‘국가 AI컴퓨팅 센터’를 지을 계획이며 여기에 공공이 51%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같은 시점에 중국 스타트업이 딥시크를 공개하면서 자원 효율적인 인공지능 개발 시대를 예고했지만, 에너지와 자원 수요 증가 추세 자체를 막지는 못할 것이다. 기술혁신으로 효율을 높이면 단위당 자원 투입량은 줄어들지만, 가격의 하락으로 수요가 증가하여 총자원 소비는 오히려 증가하는 리바운드 효과 또는 제본스 역설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인공지능 지원을 위한 데이터센터 전력수요가 20%까지 폭증하여 국가적인 문제로 번진 아일랜드의 환경부 장관 이먼 라이언이 2024년 9월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발언이 주목할 만하다. 그는 인공지능 개발 역시 “우리가 약속한 기후한계 안에서 작동해야 하고, 전력의 안정적 공급이 가능한 전력망 안에서 작동해야” 한다고 분명히 말했다. 생태경제의 원칙에 따라서 인공지능과 기후의 관계를 압축적으로 매우 잘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주요 내용
기후한계 안의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좌표가 필요하다
이 책은 1부에서는 인공지능이 기후에 미칠 다양한 영향을 긍정적, 중립적, 부정적 견해로 분류하여 기존 논의를 종합했다. 비즈니스 쪽에서 주도하는 인공지능의 긍정적 역할 논의는 현재 정치권이나 미디어에서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학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중립적인 위치에서 디지털과 녹색을 정책적으로 적절히 조합하여 선순환을 이뤄야 한다는 주장들도 있다. 하지만 디지털과 인공지능이 기후와 생태에 줄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하는 분석과 연구는 아직 공론장에서는 비주류이고 국내에서는 그조차도 접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이 책은 디지털 혁신이 발생시킬 생태적 유해성에 대한 글로벌 연구성과를 다양하게 소개하고, 상당한 논리와 근거로 이들 주장이 뒷받침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어서 기후를 위해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일을 명확히 하고, 인공지능의 특별한 능력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회와 기후가 어떤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도 알아본다. 특히 인공지능의 폭발적 확산 지원을 위해 빠르게 증설되고 있는 데이터센터가 에너지 공급에 상당한 부담을 주고, 심지어 에너지전환을 지체시키는 우려가 이미 현실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은 최첨단 디지털 사회이자 생태 지체 국가
2부에서는 한국 사회가 두 전환을 어떻게 수행하고 있으며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여 어떤 특징이 있는지 살펴본다. 기존의 다양한 글로벌 성과측정지수를 이용해서 179개 국가의 위치를 디지털-생태 매트릭스에 분포시켜 봄으로써, 한국은 최첨단 ‘디지털 사회’인 반면에 생태전환의 진도는 매우 느린 생태 지체 국가임을 확인한다. 한국 경제는 역사적으로 반도체와 디지털 경제에 의존해 성공적으로 경제 선진국이 되었지만 생태전환을 위한 준비는 제대로 할 기회가 없었다. 그 결과 선진국 가운데 매우 특이하게 최고의 디지털 국가이면서 동시에 최악의 생태국가라는 불균형에 빠졌다.
2020년 코로나19를 계기로 시작된 한국형 뉴딜정책으로 한국 정부도 이 불균형의 늪에서 빠져나올 중요한 기회를 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디지털전환에 치우친 설계와 부실한 그린뉴딜, 과도하게 사기업에 의존한 정책 추진, 정부의 일관된 정치적 의지 결여, 그리고 윤석열 정부로의 교체가 이루어지면서 점점 더 균형에서 멀어졌다. 같은 시기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한국의 글로벌 대기업은 4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36개 주요 기업이 RE100에 가입하는 등 외형적으로는 생태전환에 높은 관심을 기울였다. 하지만 한국 기업은 유럽과 북미는 물론 여타 아시아 기업에 비해 RE100 목표 달성 시기를 2040~2050년으로 과도하게 늦춰 잡는 등 실제로는 생태전환의 의지가 상대적으로 낮았음을 확인한다.
디지털 삼국지 VS 생태 삼국지
그러면 ‘디지털 과잉, 생태 지체’ 국가인 한국이 어떻게 불균형을 바로잡고 두 전환의 균형을 회복하여 더 나은 미래를 열 수 있을까? 3부에서는 글로벌 디지털전환으로 가는 현실의 세 가지 경로로서, ①미국으로 대표되는 시장주도 모델, ②중국의 국가주도 모델, 그리고 ③유럽의 정책기조를 반영한 권리주도 모델을 제시한 미국의 법학자 아누 브래드포드의 아이디어를 생태전환으로 확장하여 중요한 시사점을 얻는다. 세 모델과 우리나라를 비교해보면, 한국은 시장주도 모델을 주도해온 미국보다도 더 심한 시장의존형 전환패턴을 보였던 반면, 녹색산업정책을 주도하는 중국 모델의 장점이나 시민의 권리와 안전을 중시하는 유럽 규제모델의 장점을 지나치게 외면하고 있다. 글로벌 세 모델이 디지털 규제 강화, 녹색산업정책 경쟁, 시민의 권리 보호 등으로 수렴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우리 사회가 지금이라도 이런 추세를 적극적으로 참조해야 디지털 편향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한국의 전환 경로를 바꿀 정책들
4부에서는 우리사회가 ‘디지털 편향’과 ‘생태적 지체’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표적인 정책 수단으로서 디지털 독점규제, 인공지능과 가상자산의 생태적 영향 통제, 그리고 녹색산업정책 도입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선 두 전환의 방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권력관계인데 무엇보다 디지털 권력을 견제하는 독점규제가 필요하다. 따라서 현재 경제권력의 중심부를 차지하면서 시장경제에서 두 전환의 방향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거대 빅테크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들이 사적 이익만을 생각하며 인공지능과 디지털 혁신의 방향을 좌우하는 행태에 대해 공적으로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유럽의 ‘인공지능법’을 필두로 전 세계적으로 뜨거운 쟁점이 되는 인공지능 관련 규제에서 사회적 요소만이 아니라 생태적 요인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두 전환의 균형을 위해서는 디지털 영역에서의 규제뿐 아니라 지체된 생태전환의 속도를 올릴 녹색산업정책을 시급히 도입하는 것도 필수다. 산업정책 덕분에 선진국 반열에 올랐던 한국이 지금은 녹색산업정책에 뒤처지고 있는 역설적 상황에서 빨리 탈출하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기후 대응과 생태전환, 산업 경쟁력을 위해서 녹색산업정책 도입을 절박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한국 사회의 미래는 여전히 열려있다. 우리 삶에 점점 더 깊숙이 들어오고 있는 디지털과 인공지능 혁신의 이점을 충분히 누리면서도, 이들이 시민권 약화, 사회적 불평등, 민주주의 침식, 그리고 기후위기와 생태파괴로 귀결되지 않고 지구생태계의 한계 안에서 작동하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전환의 특이점이 사회적, 생태적 비극으로 끝나지 않게 할 수 있으며, 기후와 생태의 티핑포인트를 넘기 전에 생태적으로 안전한 사회적 티핑포인트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두 전환이 특이점과 티핑포인트를 넘기 전에 시민들의 지혜를 모아 우리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기후를 위한 경제학》의 저자가 선보이는 네 가지 차별적 특징
저자의 전작 《기후를 위한 경제학》은 사서 추천도서, 서점인이 뽑은 올해의 책, 환경단체의 올해의 환경책, 일곡 유인호 학술상, 세종도서 등 다양한 부문의 추천 및 수상도서로 선정되고 수많은 저자 강연과 행사에 초청되며 많은 관심과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디지털 부문 사기업, 시민사회, 공공영역을 모두 경험했던 저자의 이력이 작용했다. 이 책 《AI와 기후의 미래》는 이러한 탄탄한 이력에 기초하여 디지털 비즈니스의 변화추이를 관찰하고 디지털과 생태라는 두 전환을 통합적으로 분석하고 연구함으로써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첫 번째 특징을 갖게 되었다. 한국의 디지털 분야 전문가들은 디지털전환이 가져올 미래는 낙관적으로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지만 생태전환에는 관심이 적었고, 반대로 환경운동이나 환경정책에 관여해온 이들은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생태전환의 절박성에 대해서는 깊이 이해하고 있었지만 디지털전환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했다. 이렇게 지식과 정책 분야의 관계자들이 두 전환에 대해 인적·지적으로 분리된 상황은 두 전환을 통합할 정책과 제도 설계의 기회도 멀어지게 했다.
이 책의 두 번째 특징은 우리 학계와 정책 분야에서 생소한 생태경제학의 관점에서 두 전환을 함께 보았다는 점이다. 생태경제학이라는 낯선 학문을 우리 사회에 소개해온 저자는 ‘인공지능과 디지털 혁신도 오직 지구생태계의 한계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생태경제학의 관점을 일관되게 적용하고 있다.
세 번째 특징은 인공지능과 기후, 디지털전환과 생태전환을 상호 선순환시킬 핵심 요인이 기술적 잠재력이나 혁신의 수준보다는 사회를 구성하는 이해관계자들 사이의 역학관계, 즉 권력관계와 민주적인 거버넌스 수준에 있다고 전제한 점이다. 그에 따라 ‘더 많은 기술, 더 나은 혁신’이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결정적으로는 사회정치적인 역학관계의 재구성이 인공지능과 기후의 선순환을 촉진하게 되리라 전망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규제와 혁신이 서로 충돌’할 것이라는 통념을 거부한다. 치열한 글로벌 디지털 혁신 경쟁에서 뒤지지 않으려고 분투하려는 관점에서는 기후와 생태를 이유로 인공지능과 디지털을 규제하자는 주장이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기술혁신을 통한 사회변화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저자는 일반의 선입견과 달리 사회의 공동이익과 기후 대응을 위해 디지털 기술을 적절히 규제하는 것은 오히려 사회 친화적이고 생태 친화적인 혁신을 낳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엄격한 교통법규가 오히려 자동차 산업의 부흥을 촉진하고, 까다로운 식품·의약품 규제가 식품과 제약 산업의 성장을 돕는 등 규제와 혁신이 동반된 사례는 역사적으로 수없이 많다. 비용 효율적인 인공지능 혁신으로 화제가 된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가 미국에서 먼저 나오지 못한 이유는, 미국의 ‘공적 규제’가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극소수 빅테크의 ‘사적 독점’이 시장의 혁신을 억압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디지털전환과 생태전환이라는 역사적 분기점에 서 있는 오늘, 우리 사회와 지구를 위한 바람직한 인공지능 혁신에 기여하려는 디지털 분야나 생태 분야의 독자 모두가 이 책으로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도서정보 : 김병권 지음 | 착한책가게 | 448쪽 | 값 28,000원
Copyright (c) 출판저널.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