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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의 책으로 세상 읽기] 사유화 논란 서울국제도서전, 공공성과 민주적 거버넌스 회복해야

출판저널 편집부 2025-05-07 11:44:23 조회수 157

사유화 논란 서울국제도서전, 공공성과 민주적 거버넌스 회복해야

- 그들만의 축제가 되지 않고, 우리 모두의 축제가 되기 위해서는 


글/ 정윤희 (출판저널 발행인, 문화평론가)




| 정윤희 |

문화콘텐츠와 책문화정책 전문가이다. 언론학 전공으로 언론학 석사, 문화콘텐츠 전공으로 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책문화네트워크 대표, ‘출판저널’ 발행인 겸 편집인, 제12기 국회입법지원단 위원(문화체육관광분과),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자문위원, 경기도 광역도서관위원회 위원, 한국출판학회 이사, 한국도서관협회 출판미디어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참 살기 어려운 시대이다.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소득불평등이 심한 국가로 꼽히며, 청년과 노년층, 자영업자 등의 계층 간 격차가 더욱 커지고 있고, 이는 문화 접근성과 참여 기회의 격차로도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공공성을 지향해야 할 서울국제도서전 사유화에 대한 문제의식과 논란은 단지 출판계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문화적 정의와 민주주의의 수준을 가늠할 척도가 되고 있다.

최근 ‘서울국제도서전 사유화 반대’ 서명 운동에 저자, 출판인, 서점인, 독자 등 5,500명 이상이 참여하면서, 주식회사 서울국제도서전의 운영 방식과 공공성 훼손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핵심 쟁점은 서울국제도서전이 소수에 의해 운영되는 사유화 구조 속에서, 공공재로서의 책문화 가치가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주식회사 서울국제도서전은 자본금 10억 원 규모로 설립되었으며, 대한출판문화협회가 30%, 윤철호 협회장이 대표로 있는 ㈜사회평론이 30%, ㈜노원문고가 30%, 나머지 10%는 개인 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지분 구조로 인해 서울국제도서전이 겉으로는 민간 주도의 행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오랜 기간 국고보조금을 통해 운영되어 온 만큼, 주식회사 체제가 아닌 공공재로서의 성격과 책임을 갖고 운영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2023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대한출판문화협회에 직접 국고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고, 도서전 참가 출판사에 약 6억7천만 원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2024년에는 수익금 정산 누락 의혹으로 출협에 대한 지원이 중단되고,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을 통해 개별 참가 출판사에 최대 300만 원까지 지원하는 방식으로 변경되었으며, 총지원 금액도 약 2억 원으로 감소하였다. 이는 공공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될 수 있지만, 행사의 근본적인 구조와 운영 거버넌스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서울국제도서전은 대한민국 책문화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대표적 문화행사이다. 그러나 참여하고 싶은 수많은 저자, 출판사, 지역서점들은 여전히 높은 진입 장벽 앞에 서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저자 북토크나 부스 홍보비 등 일부 지원을 하더라도,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원사 중심으로 부스 참여 기회가 제한되는 방식은 결과적으로 많은 책문화 주체들에게 박탈감과 소외감을 안긴다.

칼 폴라니는 『거대한 전환』에서 ‘사탄의 맷돌’이라는 개념을 통해, 시장의 자기조정 메커니즘이 인간 공동체를 파괴한다고 경고했다. 오늘날 책문화 역시 자본 중심의 논리, 수익성 우선의 구조 속에서 공공성과 다양성이 위협받고 있다. 건강한 책문화생태계는 시장 독점이 아닌 연대와 상생이라는 생태적 균형 위에서 가능하다. 이는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문화자본의 공정한 분배’와도 궤를 같이한다.

서울국제도서전은 공동체 가치, 문화 접근의 평등성, 참여와 다양성을 중심으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이는 단지 행사 운영방식의 변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책문화의 공공성과 문화민주주의 실현이라는 근본 과제와 직결되어 있다.

문화민주주의란 문화 자원과 참여 기회가 특정 집단에 집중되지 않고,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평등하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서울국제도서전이 특정 단체의 이해관계에 따라 운영되는 한, 표현의 자유, 문화 다양성, 그리고 민주적인 책문화의 형성은 심각하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K-컬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지금, 서울국제도서전은 세계 출판계와 교류하며 다양한 저자와 출판사가 국제무대에 설 수 있는 공정하고 개방적인 장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해외 출판사와의 교류 활성화는 물론, 도서전 참여의 문턱을 낮추는 정책적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서울국제도서전은 단순한 상업적 행사가 아니다. 이는 국가가 국고로 운영을 지원해 온 문화적 공공 플랫폼이며, 책을 매개로 한 사회적 가치와 공동체 정신이 구현되는 장이다. 따라서 서울국제도서전은 특정 주체의 소유물이 되어서는 안 되며, 공공재로서 운영되어야 한다.

특정 단체와 소수 지분에 의해 운영되는 주식회사 서울국제도서전 체제는, 공공성과 문화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시대 정신에 부합하지 않으며, 책문화의 다양성과 모두의 참여를 요구하는 오늘의 흐름에도 어긋나는 구조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적극적으로 예산을 지원하고, 출판사, 저자, 독자, 도서관, 지역서점 등 다양한 책문화생태계 주체들이 함께 운영하는 ‘서울국제도서전 운영위원회’ 방식의 민주적 거버넌스 체계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에야 비로소 서울국제도서전은 특정 이해집단의 행사에서 벗어나, 책문화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사회 전체의 공익을 실현하는 세계적인 축제로 거듭날 수 있다.

특히 K-컬처의 문화적 기반인 출판생태계가 더 풍요로워지기 위해서는,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정책적 관심과 예산 지원을 병행해야 한다. 이는 단지 하나의 행사 지원을 넘어, 대한민국 책문화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세계와의 문화 교류를 확대하는 전략적 투자이기도 하다.

서울국제도서전 공공성 논의는 특정 단체의 이해득실 문제가 아니다. 책문화생태계 전체의 건강성과 민주성을 위한 질문이자, 우리가 과연 문화민주주의 사회를 지향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다. 이러한 성찰이야말로 한국의 출판문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며, 서울국제도서전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인들과 함께하는 책문화 축제가 되는 첫걸음이 된다. 

서울국제도서전 사유화 논란이 또 다른 이해집단의 논리나 이익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책문화생태계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공론의 장을 통해 공공성과 지속 가능성을 위한 바람직한 해법을 도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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